나이가 성인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 사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거나,
그다지 즐겁지 않거나,
혹은 사후에 걱정 거리가 되거나,
진리가 몹시 궁금해졌거나.........
기타 등등의 사연으로 구도를 시작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아는 왜곡을 피할 수 없는 가운데 성장을 하게 되고,
그렇게 오염된 채로 성장된 나머지
진정성을 가진 바램과,
진정성을 가진 하이라키를 보유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언정 매우 어렵게 된 것은 사실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순진하고, 담백하여
설령 사회 속에서 타인과 마찬가지의 행색과 행동을 하더라도
진정성을 잊지 아니하였거나, 혹은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열의가 아직도 남아있다면
그는 진실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왜곡된 자아는 왜곡되어버린 대상 이외에 다른 것을 발견하기 어렵고,
그런 나날들이 오래도록 흘러가다보면,
그는 진정성을 잃어버리거나 기껏해야 왜곡된 사회의 바람직함이라고 하는 추상적 정의나 사랑 따위를 좇을 뿐이다.
순진하고 담백한 사람은,
설령 세상이 어지럽고,
불평부당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소신을 잊지 않는다.
따라서 진실의 복제품인 문화라고 하는 것에 대할 때에도 이에 속지 아니한다.
물론 종교라는 문화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략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의지가 있어서 도판을 기웃거린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진실한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함이 너무도 확실하였다.
최소한 그것에 만큼은 자신을 속일 수 없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타인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양심은 매우 건전하게 작동하였다는 뜻이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몇몇 사이비에 속다가 보면,
더 이상 구루라고 하는 따위의 것들에 대한 신뢰 따위는 생기지 않는다.
소위 "나도 알만큼 알거든......." 이란 마음이 팽배한다.
책도 많이 읽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아니하였던 것들이 많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다독한만치 아는 것이 많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를 소위 알음알이라고 한다.
그런 알음알이는 단 몇 가지 질문에 일어설 다리도, 허리도 모두가 끊긴다.
선의 독자적인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잘난 채하고, 아는 채 하는 자아의 입을 봉해버려서 진실로 생각으로써가 아니라 실재에 가 닿게 하는 것이다.
그런 선의 뛰어난 방편에도 불구하고 선은 입으로 다 해버리고 마는 것으로 와해되었다.
누가 궤담을 많이 하고, 잘 하고, 연습하고, 생각하고, 댓구하고, 입심으로 누르느냐의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체험한 것들을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수행의 초기단계의 하나일 뿐이고,
그 누구도 체험다운 체험을 한 자가 없으며,
책이나 읽고 상상을 하고 이해정도나 하는 정도이고,
받아칠 수 있는 방법 따위의 사상누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입으로 다 해버리는 자들의 특성은
진정성있는 자에게서 진실한 수행을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했거나,
진정성있는 자를 스승으로 삼아보지도 않았거나,
누군가를 스승으로 삼았다가 인정을 받아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신을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자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을 알지 못하기에,
자신을 더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자기만큼은 알아야 한다면서 외치는 것이 소위 대승이라면서 떠들어댄다.
대승이 눈 먼 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것도 오래전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말장난 하지말고, 제대로 깨달은 구석을 자세히 말로 할 줄 알아야 제대로 된 학인이라고 할 것이며,
더불어
자세히 말하고, 자세히 들으면서 진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유일한 만남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