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먹고
산소를 마시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고양된 문화를 습득하고, 문명의 이기를 가지는 등 인간은 무엇인가를 소비한다.
그러한 소비를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확보, 즉 소유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위 소유를 수월케 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 돈과 권력이어서, 결국 이를 경쟁적으로 다툰다.
자고
싼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찌꺼기를 배설하고, 문화를
달개비님의 뜻에 따라 무후가 대신하여 다음과 과제를 올리니 무지만야는 이에 응하여 진지하게 답하길 바랍니다.
상위차원은 하위차원에 대한 스스로 우러나오는 존엄과 귀함을 동시에 갖도록 함과 동시에 세속적 우월을 지양하고 자비의 마음가짐이 우선되어야 하는 바 이에 견해는 어떤가?
결국 상위차원으로 갈수록 사실로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바를 스스로 이해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며, 이에 합치되는 것이 즉, 실존영역으로의 변경이며, 이것은 다시 말해서 불이의 영역으로의 탈변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다는 것을 견지하는 뜻을 설명하시오.
상위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면 하위단계로 이전할 수 있다는 것에 충분히 긍정하는지 여부도 답하시오.
자아는 증상만의 바탕인 바, 이를 주시하기 위해서 무지만야가 생각하는 바는 무엇인가?
수행보고와...
[X|최종인식주체로서의 진정한 나]를 가리키는 수많은 말이 있다.
예컨대, 달개비 님은 주시자라 하고, 그 작용을 사티라 한다. 그 외 Ruach (רוּחַ , rûaħ), Pneuma (πνευμα), Akasha (or Akash, Aakaashá, Ākāśa, आकाश), Atman (IAST: Ātman, sanskrit: आत्मन्), Prana (प्राण, prāṇa), Tao (道, pinyin: dào) 등의 말이 그것이다.
이 위키에서는 [X|최종인식주체로서의 진정한 나]를 "[X]"라 정의한다.
이하 달개비 님의 눈은 눈을 볼 수 없다를 참조. 끝.
나, 즉 [자아|자아(自我, ego)]는 생각, 감정 등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는 행동의 주체로서의 '나 자신'을 말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자아]는 우리 일상의 모든 경험(감각, 사고, 행동 등)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경험을 통일하여 모든 경험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당사자라고 생각되는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을 말한다. 칸트는 본능·욕망에 의해 살고 있는 경험적인 [자아] 이외에 도덕적으로 살려는 자신([양심])을 신적(神的)인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여 '본래적인 자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는 우리의 심신(心身)은 늘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시 같은 자신으로 생각하고 타인과 구별한다. 이 동일하다고 의식한 자기를 [자아]라고 한다.
심리학적 정의를 살펴보면,
첫째, 우리의 심신(心身)은 늘 성장하고 변화한다....
위키 서문
인간의 한계상황, 그것은 바로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제약조건에서 인간은 반사적으로 삶이라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은 사는 동안 뭔가 특별한, 의미있는, 뭐 그런 삶을 살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결국 '[자아|나](이 위키에서 "[자아|자아(自我, ego)]"라 한다.)는 어떻게 어떻게 살고 싶다.'의 문제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는 등의 '무엇 무엇이 되고 싶음', '무엇 무엇을 하고 싶음'이라는, 그러한 바람, 기대, 희망, 즉 [욕구]의 만족 내지 충족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좋은 삶이라는 것은 무엇 무엇이 되고, 무엇 무엇...
고찰하게 된 경위
"달개비 님은 딱히 어떻게 살아라!"라고 명시하지 않는다.
왜일까?
생각건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관점이라 그런 것이라...
그런데 에고는 결코 살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살아야만 하며, 살아감에 있어서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을 때 고선생의 부정관을 쉽게 그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 즉, 사는 게 뭐 그렇고 그래서 살기 싫을 때 고선생이 인생 뭐 별거 없다는 식의 뉘앙스만을 취하여 그 정당성의 근거로 삼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비난과 비하만을 일삼으며 "인생 뭐 있간디" 따위의 체념, 허무주의에 이르러 무기력한 삶을 산다.
고타마의 부정관을 정당성의 근거로 취함에 있어 위와 같은 해석은 나의 해석에 불과할 뿐이다.
환언하면, 고선생의 부정관을 설한 취지나 목적을 판별하여...
대념처경(大念處經 ; D22)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 번역
경의 차례
I. 서언
II. 몸의 관찰[身隨觀]
II-1.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II-2. 네 가지 자세[四威儀]
II-3. 분명하게 알아차림
II-4.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
II-5.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II-6.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III. 느낌의 관찰[受隨觀] IV. 마음의 관찰[心隨觀] V. 법의 관찰[法隨觀]
V-1. 다섯 가지 장애[五蓋]
V-2.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V-3.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
V-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V-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V-5-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V-5-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V-5-3. 괴로움의 지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
V-5-4.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
VI...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옷을 걸치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 탁발하러 싸밧티 시로 들어가셨다. 존자 라훌라 또한 아침 일찍 법의를 걸치고 가사와 발우를 들고 세존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이때에 세존께서는 고개를 돌려 존자 라훌라를 불러 말씀하셨다.
3. [세존] "라훌라여, 어떠한 물질이던지 과거이건, 미래이건, 현재이건, 내적인 것이건, 외적인 것이건, 거친 것이건, 미세한 것이건, 열등한 것이건, 수승한 것이건, 먼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라훌라] "세존께서는오...